새로운 질서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

목록이 아름다운 까닭은 특정한 논리에 따라 정보가 배열된 질서 때문이다. 어떤 글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것이 다름 아닌 글자의, 단어의, 구절의, 문장의, 문단의 목록임을 감지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어떤 웹사이트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것이 다름 아닌 파일의, 태그의, 요소의, 하이퍼링크의, 글의, 이미지의, 영상의, 상자의, 문서의 목록임을 감지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새로운 질서」는 2016년 이래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자 겸 워크룸 편집자 민구홍 혼자 또는 그와 마음이 맞는 동료(박찬신, 손아용, 윤율리 등)와 함께,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진행해온,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다. 크게 공유(강의와 대화), 실천(연습과 실습), 비평으로 이뤄진 강좌는 컴퓨터 언어, 특히 HTML, CSS, 그리고 약간의 자바스크립트를 도구 삼아 정보의 새로운 질서를 탐구한다. 수강생은 자신의 관심사에 관한 목록을 작성하고(질서 1), 여기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 웹사이트로 치환한 뒤(질서 2), 여기에 또다시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 특정 공간에 선보인다.(질서 3) 이 과정에서 수강생은 실패에 익숙해지며 단계별로 매체가 변모하는 국면을 주도해보는 방법을 익힌다.

한편, 강좌명은 영국의 포스트펑크 밴드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후신 뉴 오더(New Order)가 밴드명을 지은 유래와 얼마간 관련이 있고, 세계정부에 관한 음모론에 등장하는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 NWO)와 프로레슬링 팀 뉴 월드 오더(New World Order, nWo)와는 얼마간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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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반 3기, 심화반 1기 모집 중…

교훈

보안관님, 피트 마텔(Pete Martell) 씬데요, 음, 전화 돌려드릴게요. 빨간색 의자 옆 테이블에 놓인 전화기로요. 벽에 붙은 빨간색 의자요. 테이블 위엔 램프가 있고요. 그 왜, 전에 우리가 저쪽 구석에서 옮긴 램프 있잖아요. 전화기는 갈색 말고, 검은색이요.

1990년대 미국 드라마 「트윈 픽스(Twin Peaks)」의 등장인물 루시 모런(Lucy Moran)의 역사적 첫 대사는 어떤 대상에 대한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치밀하고 편집증적인 태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교양 강좌 「새로운 질서」의 교훈으로, 「새로운 질서」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 미디어 버스의 ‘한 시간 총서’ 『새로운 질서』의 제사로 삼을 만하다.

『새로운 질서』 가운데

『새로운 질서』
민구홍, 『새로운 질서』, 서울: 미디어버스, 2019년 11월 14일. 128쪽, 100 × 150 × 20밀리미터, 109그램, 979-11-966934-9-7. ‘한 시간 총서’ 다섯 번째 책으로, 교양 강좌 「새로운 질서」의 내용을 간추린, 즉 내용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 결과물. 편집: 임경용, 디자인: 강문식, 제작: 세걸음.

목록은 일반적으로 어떤 물품의 이름이나 책 제목 따위를 일정한 순서로 적은 것을 가리킨다. 목록은 항목으로 이뤄진다. 목록은 항목의 집합이다. 때로는 집합의 집합이고, 더러 집합의 집합의 집합이다. 즉, 어떤 목록은 어떤 목록의 항목이고, 어떤 항목은 어떤 항목의 목록이다. 한편, 목록은 완강하다. 목록에는 순서, 즉 지배 논리가 있고, 항목은 그에 따라 번호순(오름차순/내림차순), 알파벳순, 가나다순 등으로 배열된다. 논리가 강압적일 때 항목은 억지로 몸매를 가다듬을 수밖에 없다. 목록은 동시에 유연하다. 때에 따라 항목은 논리에 영향을 미쳐 목록의 성질, 나아가 목록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항목은 전체의 부속임에도 전체를 뒤흔들 힘을 품고 있다. 하지만 목록이 지닌 모순성은 목록이라는 형식의 태생적 가지런함 뒤에 숨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2017년 12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미국의 사업가 데니스 호프(Dennis Hope)가 운영하는 루나 엠버시(Lunar Embassy)에 24.99달러를 지불하고 달에 4,046제곱미터에 달하는 부동산을 매수한 무렵에 입사한 인턴은 얼마 뒤 퇴사했다. 회사에서 제공한 것이 고작 운영자가 일하는 회사에서 사용하는 책상의 일부 공간, 스툴, 인턴증, 명함, minguhongmfg.com을 도메인으로 한 500메가짜리 업무용 이메일 주소뿐인 까닭이었다. 내세울 만한 점이 이름뿐인 회사에 인턴으로 지원한 용기에 탐복한 운영자가 그에게 달 부동산 일부를 무상으로 임대할 참이었으나 결국 그가 얻은 것은 민구홍 매뉴팩처링 인턴이었다는 이력 한 줄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회사에 어울리는 사건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명확성은 웹사이트가 지닌 수많은 목적 가운데 하나다. 이 밖에도 웹사이트는 놀랍고, 기억에 남고, 기념비적이고, 진정하고, 충격적이고, 예측할 수 없고, 지루하고, 기괴하고, 조용하고, 미묘하고, 놀라울 수 있다. 이는 웹사이트 한 곳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웹사이트는 대부분 이중적이다. 주관적이면서 동시에 객관적이다. 이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과정에도 적용된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사람은 그렇게 작가면서 동시에 건축가가 된다. 웹사이트 또한 무엇이 되든 만드는 사람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점원은 해당하는 음식을 가져다준다. 음식이 식탁에 오르는 속도는 일반적으로 주방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만일 식재료가 모두 소진됐다면, 점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다른 음식을 권하거나 다음에 다시 찾아달라는 말을 건넨다. 이따금 점원이나 주방장이 깜빡하고 주문을 잊어 멍하니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우리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인터넷이 식당이라면, 음식은 정보, 점원은 서버(server), 우리는 고객, 즉 클라이언트(client)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터넷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우리가 메뉴판 앞에서 숨을 고르는 단 몇 초 사이에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몇 년 뒤 내 방 책상에 컴퓨터가 놓였다. 컴팩(Compaq) 데스크톱의 시동음은 그때껏 들어온 것과 조금 달랐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1999년 무렵에는 사랑하는 친구를 즐거움을 주기 위해 야후! 지오시티(Yahoo! GeoCities)에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화면 가운데 자리 잡은, 당시 내 또래가 좋아할 법한 글과 그림 뒤로 적갈색 배경에 MIDI 음악이 흘렀다. 온라인 환경이 PC 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넘어가면서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이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닷컴 버블이 꺼지고, 웹 2.0을 표방한 웹의 새로운 생태계가 자리 잡은 2009년 말, 야후!에서는 지오시티 운영을 중단했다. 이제 그 웹사이트는 오직 내 꿈속에만 있다. 복구할 수 없는 것은 내 파일뿐이 아니었다. 누구나 자기식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무대 또한 무너지고, 이제 그 자리는 소셜 미디어의 차지가 됐다.

2015년부터 운영해온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 특히 웹을 사랑하는 까닭은 그것이 (인터넷에만 연결돼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접근하기 쉬우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노동력과 비용으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술을 기반에 두므로 실제로 유용하거나 유용한 척할 수 있고, 재고품을 보관할 물리적인 사설 창고 또한 필요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이 잠들기 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마주할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 가운데 약 90퍼센트는 ‘구글링’에 할애한다는 비공식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생각보다 검색엔진을 더 자주, 더 오랫동안 이용해야 할지 모른다. 원하는 정보를 얻으려 몇 번이고 다음 페이지로 이동하더라도 도서관에 들르거나 하다못해 책장을 넘기는 일보다는 어쨌든 조금 더 쉬운 일이다. 검색엔진이 지닌 무한한 권능을 믿고 따르는 순간, 원하는 정보는 웹상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는 점은 엄연한 사실이 된다. 일단 즐겨 사용하는 검색엔진에 마련된 고급 기능을 검색하는 것으로 권능을 시험해보자. 이 웹사이트의 부족한 점과 페이지마다 자연스럽게 드는 호기심은 그렇게 채워진다. 심지어 다른 웹사이트나 책을 대하는 순간에도.

웹과 관련한 기술의 현황을 제공하는 W3 테크(W3Techs)에서는 웹사이트 1,000곳을 대상으로 빈번하게 사용된 언어의 순위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영어가 54.5퍼센트로 1위를, 한국어는 0.9퍼센트로 15위를 차지했다. 우리가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기막힌 우연과 무관하게 웹과 관련한 기술에 관한 핵심 정보는 대부분 영어로 제공된다. 한국에서 학생으로서 9년 동안 성실하게 의무 교육을 받았음에도 자신의 영어 실력을 과신하기 어렵다면, 구글 번역, 파파고, 카카오 번역 등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번역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번역 결과물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디자인 관련 단행본 번역문의 초안 정도는 맡길 수준은 되니 말이다.

컴퓨터 언어를 도구 삼아 다루는 일, 즉 코딩은 글쓰기와 다르지 않다. 아니, 코딩은 실제로 글쓰기다. (⋯) 코딩으로 􏰃굳이 『동물 농장(Animal Farm)』이나 􏰃『1984􏰂』를 구현할 필요는 없지만, 오웰의 정리한 자신이, 나아가 작가가 글을 쓰는 네 가지 동기—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는 코딩에도 완전히 부합한다. 단, 욕망에는 올바른 문장을 구사하고, 문장과 문장은 구두점과 공백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등의 크고 작은 제약이 따른다. 코딩에서 욕망은 제약 없이 실현되지 않는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사람은 어떤 단계에서는 당연히 디자이너이자 마케터가 돼야 한다. 하지만 그전에 무엇보다 작가가, 그보다는 (순전한 이기심을 품은) 편집자가 돼야 한다.

밥 길의 격언—“도둑질은 좋다.”—은 웹사이트를 만들 때 또한 충분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웹 브라우저의 개발자 도구에 내장된 웹 검사기를 이용하면 웹사이트에 적용된 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작업에 이용할 수 있다. 평소 호감을 품어온 작업자의 작업 방식을 그대로 흉내 내보거나 내밀한 작명법 또한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학습 도구로도 삼을 만하다. 웹 조사기는 웹 브라우저 환경 설정의 고급 메뉴에서 개발자 도구를 활성화한 뒤에 사용할 수 있다. 단축키는 ‘옵션 + 커맨드 + i’다.

컴퓨터는 인간이 어렵고 복잡한 일을 쉽고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만든 물건이다. 컴퓨터 언어 또한 마찬가지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이 처음에는 다소 복잡해 보이더라도 컴퓨터와 컴퓨터 언어의 목적을 되새기며 원리와 규칙을 이해하다 보면 실마리는 자연스럽게 보이기 마련이다. 물론 이성과 상식만으로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면, 그냥 느낌을 따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실패는 그 뒤에 인정해도 늦지 않다.

마지막으로 (당연히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 데스크톱이든 랩톱이든 상관없다. 운영체제 또한 마찬가지다. 단, 앞서 소개한 “도둑질은 좋다.”라는 길의 격언은 아무리 매력적이더라도, 감쪽같을 수 없다면, 컴퓨터나 인터넷 환경을 마련하는 데는 고스란히 적용되지 않는다.

『새로운 질서』

아름다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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